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로마 제국/정체성 (문단 편집) === 동로마는 비잔티움으로 불릴 이유가 있다는 의견 === 다만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용어를 쓴다고 해서 이 제국이 고대 로마로부터 직접적인 연속성 있는 국가임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이미 정착되고 관습으로 굳어진 용어라는 점도 있고, 2200여년의 길디 긴 로마사를 지칭할 때 편리한 용어이기 때문에 사용되는 점도 있다. 동로마와 고대 로마의 연속성이 부각된 후 역덕후들 사이에선 '비잔티움 제국'이란 용어 자체를 일종의 어그로{{{-2 (고대 로마 제국과는 단절된 별개의 나라임을 나타내려는 목적)}}}로 취급하거나, 매우 조심스럽게 제한하는 경향이 있지만[* 일례로 역사 마니아들이 모여서 토론을 벌이는 어느 외국 사이트에서 '동로마 제국'이란 용어를 써야 하는지, '비잔티움 제국'이란 용어를 써야 하는지를 가지고 투표를 벌인 적이 있는데, '비잔티움 제국' 쪽에 표를 던진 사람들 중에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나 [[이라클리오스]]와 같은 특정 황제의 통치기 또는 이슬람 세력의 카르타고 함락과 같은 특정 사건을 기준으로 그전은 '동로마', 그 후는 '비잔티움' 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미 관습적으로 굳어진 용어라서 딱히 비하 목적 없이도 널리 쓰이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건 비잔티움 외에도 사례가 많다. 가령 [[후고구려]]는 왕씨 고려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들어간 명칭이고 당사자들은 '고려'라 불렀지만, 그럼에도 오늘날 비하 목적 없이 널리 쓰인다. 유사하게, 상나라를 중심지 지명을 따서 [[은나라]]라고 부르는 건 사실 당대에는 주변국이 일부러 비하하려는 의미가 다분했으나 현대에는 정치적 의도가 없다. 즉 현대에는 비잔티움이라는 용어 자체에서 비하 목적을 읽어낼 수 없다는 것.] 그 밖에 연속성을 부정하는 논리로 "로마 제국이면서 로마가 왜 영토에 없냐?"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로마國(로마니아)과 로마市를 구별하지 않음으로서 발생한 오류이다. 물론 로마市가 로마니아의 정체성에서 분명히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 것은 맞고, 특히 고대-중세의 지중해 국가에서 '도읍'은 단순한 행정구역을 넘어 때로는 국가와 동일시된 것도 맞다. 최소한 동로마인들에게도 이탈리아의 로마市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옛날 도읍"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콘스탄티노폴리스를 Nova Roma(새 로마)로 부르긴 했지만, 이탈리아의 로마市는 여전히 중요했다.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새로운 로마'로서 가진 권위는 역사가 진행되면서 천천히 축적되고 확고해진 것이지, 콘스탄티누스의 천도로 갑자기 뚝하고 떨어진 게 아니다. 동로마와의 관계가 상당히 험악하던 초기 신성로마제국 쪽에서 툭하면 자신들의 로마 칭호에 태클을 거는 [[바실리우스 1세]]에게 [[루도비코 2세]]의 명의(실제 저자는 로마 시민이자 로마 교회 사서였던 아나스타시우스)로 동로마에 걸던 반박도 "로마를 버린 자들이 로마를 참칭하는가?" 였는데 이미 이 시기에는 동로마가 로마市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했기에 이런 말이 나온 것이다. 적어도 사서 아나스타시우스를 비롯한 로마 시민들 사이에서는 콘스탄티노폴리스보다 이탈리아의 그 로마가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또한 동로마 제국 내부에서도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시절 이탈리아와 로마市에 (단순히 고토라는 것만으론 설명하기 힘든) 집착을 보이는 등 "로마니아면 그래도 이탈리아의 로마市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질문은 당사자들에게 심각하고도 진지한 물음이었다. 그러나 로마市상실이 아무리 로마니아의 정체성에 심각한 아픔이었다고 하더라도, 상실이 곧 '로마니아가 아니다'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당사자인 동로마인들은 물론이고, 외국인인 서방인들 역시도 동로마를 분명 로마니아(로마國)로 인정했다. 제4차 십자군 원정으로 세워진 [[라틴 제국]] 역시도 국호는 '로마니아'였던 것을 보면, 서방인들 역시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는 그 나라'를 '로마니아'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의를 주자면, 비잔티움과 고대 로마를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꼭 비잔티움 폄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가령 게오르크 오스트로고르스키{{{-2 (Georg Ostrogorsky)}}}는 다음과 같이 고대 로마와 비잔티움을 적극적이고 의도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비잔티움의 역사는 그 최초의 단계에서는 로마 역사의 한 새로운 시대에 불과하며, 비잔티움 국가는 옛 로마 제국의 연속에 불과했다. "비잔티움적(비잔틴)"이라는 형용사형이 내포하고 있는 뜻들은 후대에 얻어진 것으로, 이른바 비잔티움인들은 그 말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언제나 스스로를 로마인으로 자처했고, 그들의 황제는 자신을 로마의 통치자, 즉 옛 로마 황제의 후계자이자 상속자로 여겼다. 제국이 존속하는 마지막 날까지 로마라는 이름은 비잔티움인들을 매혹했고, 로마의 국가전통들은 끝까지 그들의 정치적 사상과 의지를 지배했다. 비잔티움 제국은 이질적인 인종들로 이루어진 제국이었으나, 로마의 국가사상을 통해서 통합되었고, 로마의 보편사상을 통해서 주변 세계에 대한 자신의 위치를 규정했다. > >비잔티움은 로마 제국의 상속자로서 이 지상에서 유일한 제국이기를 바랐다. 말하자면 일찍이 로마권에 속했고 지금은 기독교 세계의 일부가 된 모든 국가들에 대해서 지배권을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냉혹한 현실에 의해서 점점 부정되었지만, 로마-비잔티움 제국과 나란히 옛 로마 제국의 지반 위에서 형성된 여타 기독교권 국가들이 법적으로나 이념적으로 비잔티움과 동일한 층위에 자리한 것은 아니다. 비잔티움의 군주가 로마 황제이자 기독교 세계의 수장으로서 정점에 서 있던 복합적인 국가간 위계가 발전되었던 것이다. 초기 비잔티움 시대의 제국정치는 [[서로마 고토 수복 전쟁|로마 제국의 영역을 직접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투쟁]]이 주축이지만, 중기 및 후기 비잔티움 시대에는 이 이념적 지상권(至上權)의 유지가 회전축이 된다. > >그러나 비잔티움이 제아무리 고대 로마와의 결속을 의식하고 있었고, 또 권력정치적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이념적 이유에서 아무리 집요하게 로마적 유산을 고집하고 있었더라도, 이 사회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원래의 로마적인 토대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다. [[이라클리오스|문화와 언어에서 성공적으로 그리스화가 이루어졌고]], 동시에 비잔티움의 실생활에서 교회의 지배력이 점점 더 강화되는 동안,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영역에서도 발전의 방향은 새로운 경제 및 사회질서가 형성되는 쪽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이미 [[7세기|중세 초기]]에 본질적으로 [[테마 제도|새로운 행정체제]]를 갖춘 새로운 국가체제가 나타나게 되었다.___ 예전의 일반적인 의견과는 반대로, 비잔티움 국가는 아주 강력한 역동성에 의해서 발전했다. 모든 것이 이 도도한 흐름 속에 용해되고, 끊임없는 개조와 신축을 경험했으며, 그 역사적 발전의 마지막 국면에 이르러서는 비잔티움인들의 제국도 로마라는 이름과, 실현될 수 없는 것들을 요구하는 전통들을 빼고는 옛 로마 제국과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었다.___ > >그에 반해서 초기 비잔티움 시대의 제국은 사실상 여전히 로마 제국으로 남아 있었으며, 전체 생활은 로마적 요소들로 관철되어 있었다. 초기 비잔티움 시대라고도 부르고 후기 로마 시대로고도 부를 수 있는 이 시대는 비잔티움의 발전과정에 속하기도 하지만 로마의 발전과정에 속하기도 한다. 비잔티움 역사의 처음 300년은 로마 역사의 마지막 300년을 포괄하는 것이다. 이 시기는 로마 제국으로부터 중세적 비잔티움 제국으로 이행하는 전형적인 과도기로서, 고대 로마의 생활 양식들이 점차로 소멸하고 새로운 비잔티움의 생활양식이 점점 더 강력하게 관철되는 시기이다. >---- >-Georg Ostrogorsky 씀, 한정숙·김경연 옮김, 《비잔티움 제국사 324-1453》{{{-2 ''Byzantinische Geschichte''}}} 324-1453, 9-11쪽. 문맥을 보면 알겠지만, 오스트로고르스키의 의도는 비잔티움 폄하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비잔티움을 비잔티움 그 자체로서 파악하지 않고 고대 로마의 냉장고, 화석 정도로나 파악하는 사관'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오스트로고르스키의 논조는 비잔티움이 '고대 로마 문명을 보존했다'라는 고대 로마 애호적 관점을 넘어, 비잔티움 자체로서도 역동적이고 적극적인 문명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대 로마와 아무런 상관없다는 말 역시도 비하적인 의도는 아니며, 단지 [[테세우스의 배]] 문제를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달라진 역사관으로 볼 여지는 있다.[* 그러나 고대 로마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뜻을 정체성 단절이나, 자기가 알거나 인정하는 시대 로마가 아니라고 로마 아니라는 비하성 언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한 것 또한 인정해야 한다. 그냥 로마란 나라는 비잔틴이란 별칭으로 불릴 수 있든없든 1453년에 망한 게 FACT다. "재료가 달라졌지만 이 배는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이다"라는 관점이라면, "원래의 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면 이건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다"라는 관점도 충분히 나올만한 대답이라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안토니누스 시대 로마 또한 포에니 전쟁 직후 로마와 같은 점이 거의 없으니, 역시 테세우스의 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식이면 포에니 전쟁 직후 로마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로마도 로물루스의 그 로마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애당초 현대에는 고대 로마를 초기 근대 인문주의자들마냥 '국가가 응당 따라야 할 이상향' 같은 걸로 여기지 않으며, 비잔티움은 비잔티움 자체로 가치를 인정 받는다.[* 서유럽의 비슷한 예시로 프랑스와 프랑크의 관계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중세 초 프랑크든 오늘날 프랑스든 국호는 라틴어로 동일하게 Francia이며, 프랑스와 프랑크 사이엔 분명한 국가적 연속성이 있으나 프랑스와 프랑크를 적극적이고 의도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오늘날 프랑스 비하가 아니다. 단, 비잔틴 제국과 로마 제국을 굳이 다르다고 보려는 의도는 로마 제국이 워낙 세계사적으로 의미가 큰 제국이었고, 대중적으로 굳어진 이미지는 카이사르 시대 로마, 원수정 로마, 전제정 초기 로마에서 각기 따온 그 무언가다. 때문에 유독 로마사에 대해선 테세우스의 배 운운이 건전치 못한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비잔틴 제국이 로마 제국에서 온 연속성 외엔 아무 것도 아닌 그 무언가라던가, 자기가 자의적으로 정한 특정 어떤 시대와 다르다고 로마 제국 아니라다라는 허탄한 관념이 그것이다. 둘 다 옳지 못한 극단적 견해다.] 일본의 서양사학자들 중에는 이 나라를 '''중세 로마 제국(中世ローマ帝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이 용어는 일본에서만 쓰이고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이 용어가 일반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다고 한다. 역사학자 와타나베 긴이치(渡辺金一)가 1980년에 쓴 《중세 로마 제국: 세계사를 다시 본다(中世ローマ帝国―世界史を見直す—)》는 책이 일본 내 보급력이 좋은 이와나미 신서(岩波新書)에서 출간됐는데, 이 책이 일반인들에게 꽤 읽혔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와타나베가 '중세 로마 제국'이라는 용어를 처음 고안한 사람은 아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동로마 제국(東ローマ帝国)이나 비잔츠(비잔틴의 독일어명에서 유래) 제국(ビザンツ帝国)이 더 많이 쓰이는 듯하다. 참고로 영어로 'Medieval Roman Empire'라고 하면 [[신성 로마 제국]]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어 혼동이 있을 수 있다. 영어로는 'Byzantine Empire'라고 쓰며 발음은 /baɪˈzæntaɪn/, /bɪˈzæntaɪn/, /baɪˈzæntiːn/, /bɪˈzæntiːn/, /ˈbɪzəntiːn/ (출처: 옥스퍼드 영어 사전)으로, 영어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한글로는 순서대로 바이잰타인, 비잰타인, 바이잰틴, 비잰틴, 비전틴으로 한다. 이 영어 표기를 그대로 들여와 한국에서는 보통 '비잔틴 제국' 이라고 표기하나 엄밀히 말하면 'Byzantine' 은 명사가 아닌 형용사이므로 잘못된 표기이다. 'Roman Empire' 를 '로마 제국'이라고 하지, '로만 제국'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다만 학계에서는 '비잔틴 문명', '[[비잔틴 미술]]' 등의 표현도 여전히 사용된다. 이는 '라티움'이라는 기본 명사가 멀쩡히 있는데도 라티움인, 라티움어, 라티움 제국을 각각 라틴인, 라틴어, 라틴 제국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